역사 속의 채식인
저자
이광조 지음
출판사
살림
2008-10-31 출간 | ISBN 10 - 8952210255 , ISBN 13 - 9788952210258
판형 B6 | 페이지수 95
책소개

『살림지식총서』제343권《역사 속의 채식인 | 피타고라스에서 뉴턴까지》. 먹거리와 관련된 불안감으로 최근 채식에 관란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채식은 육체의 건강뿐 아니라 정신의 건강에도 큰 영향을 준다. 생명존중과 평화의 정신을 실천했던 역사 속 많은 인물들이 채식인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자신의 삶 속에서 채식생활을 실천했던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보자.

저자소개

이광조

현재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대학원 재학 중이다.
서울시립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환경원예학과에서 SSR(Microsatellite gene)을 이용하여 핵과류(복숭아,자두,살구,아모드 등)의 유연관계분석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채식이야기』 『우리 몸은 채식을 원한다』 등이 있다.
한국 최초의 채식동호회인 "하이텔 채식동호회"를 개설하였으며, 현재 푸른생명한국채식연합(http://www.vegetus.or.kr) 공동대표로 있다.

목차

채식정명 - 왜 '채식주의자'가 문제인가
석가모니 - 산 풀도 밟지 않는 것이거늘
피타고라스 - 내면의 언어는 사람과 동물이 같다
소크라테스 - 전쟁의 기원은 육식에 있다
플라톤 - 바른 정치는 채식생활에서 시작된다.
예수 - 의인은 그 동물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잠언12:10)
레오나르도 다빈치 - 음란함을 피하고, 식이에 관심을 두라
뉴턴 - 육체에서 빛으로의 전환
간디 - 맹세를 했던 날의 축복
히틀러 - 순결한 땅의 이방인
한국의 채식인 - 채식국가를 세웠던 자랑스러운 한민족

출판사 서평

먹거리와 관련된 불안감으로 최근 채식에 관란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채식은 육체의 건강뿐 아니라 정신의 건강에도 큰 영향을 준다. 생명존중과 평화의 정신을 실천했던 역사 속 많은 인물들이 채식인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자신의 삶 속에서 채식생활을 실천했던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보자.

책속으로

채식은 한자로 '菜食'으로 쓰는데 '菜'는 '++(풀 초)'와 '爪(손톱 조)' 그리고 '木(나무 목)'자가 합쳐진 문자로 '采(채)'가 음(音)을 나타내고 '++'는 풀(草)의 뜻(意)을 나타내어 심어서 기른 풀, 곧 채소(菜蔬)를 표현하였다. 자전에서 살펴보면 채식을 '푸성귀로 만든 반찬만을 먹음'이라 해설해 놓았는데 한자의 채식은 vegetarian의 어원이었던 veget(abel)을 푸성귀, 채소로 해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vegetarian을 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채식은 지금도 단지 풀만 먹는다는 뜻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어 채식에 대한 편견에 힘을 더하고 있다. '풀만 먹고 어떻게 살아?'라 는 우스갯소리를 보건대 채식이라는 단어가 편견의 인식에 상당부분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바른 채식의 핵심은 통곡류, 콩류, 견과류, 종실류, 채소류, 해조류, 과일류를 골고루 먹는 것이며 어원적으로만 본다면 채식은 이 중 채소류만을 나타내고 있다. vegetarian의 어원인 vegetus의 의미로 거슬러 올라가 vigorous, energetic, lively, move, excite를 음미해 본다면, 채식은 건강식이나 활력식, 생명식, 역동식 정도로 표현될 수 있겠다. 중국에서는 채식을 소박한 식사라는 뜻의 '素食(소식)'으로 흔히 표현하고 있으며 일본은 한국처럼 채식이라는 용어를 쓴다. (6-7쪽)

피타고라스는 물고기부터 철학자까지 모두 형제관계이고 영혼은 이들 형태들 간에 이동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채식은 너무나 당연한 실천이었다. 피타고라스는 인간은 내면의 언어와 외면의 언어가 있지만 동물들은 내면의 언어만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내면의 언어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고기를 먹는 것과 물질주의는 피타고라스 학교에서는 금기였다. 피타고라스 학교의 철학자들에게 그것은 도덕적인 수치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명상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또한 흰색의 식물성 망토를 입었으며 동물을 사냥하거나 양털로 만든 옷도 사용하지 않았다. (22-23쪽)

바오로는 예수를 한 번도 직접 대면한 적이 없었음에도 사도들의 채식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예수를 직접 따르던 사도들 중 상당수가 채식을 하였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예수가 채식을 하였고 그 제자들에게 권장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사실 예수가 죽고 난 후 각지로 전파된 기독교는 수많은 분파를 만들었다. 콘스탄틴(Constantinus, 228~337)은 313년에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였고 323년에는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다. 그는 교회 성직자의 토지세를 면제하고 세속적인 의무를 면제해 주었는데 이 같은 정치의 호혜를 눈감으며 로마의 기독교는 정치의 간섭을 묵인한다. 그 묵인 중 하나가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정신 중 하나였던 채식의 제거이다. 결국 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은 비채식인 가톨릭교회가 기독교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채식을 하던 초기 기독교의 정신은 점차 파괴되어 갔다. (40-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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